이 책은 샤를마뉴와 카롤링거 왕조의 역사적 궤적을 따라가며, 중세 유럽이 형성되는 결정적 순간들을 분석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이다. 8세기 후반부터 9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는 단지 한 제국의 흥망이 아니라, 고대 로마의 유산, 게르만 전통, 기독교 질서가 결합하여 유럽이라는 문명권이 처음으로 통합적 정치·문화 구조를 갖춘 시점이었다. 그 중심에는 프랑크 왕국을 통일하고, 교황의 대관을 받아 황제로 즉위하며, 전 유럽적 차원의 통치를 실현한 샤를마뉴가 있다.
샤를마뉴는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한 군사적 지배자이자, 문자를 정비하고 교육을 제도화한 문화 후원자였고, 동시에 교회를 통제하고 행정을 개혁한 정치 조직자였다. 그가 남긴 제국은 베르됭 조약을 기점으로 분할되었지만, 이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각 지역 정치 체의 원형이 되었으며, 그의 통치 모델은 중세 왕권 이념의 기초가 되었다. 카롤링거 르네상스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이 시기의 문화적 진보 또한 단순한 고전 수용을 넘어, 지식과 질서를 통합한 새로운 체계의 출현을 의미한다.
카롤링거 제국은 제도적으로는 속주 체제와 순찰사 제도, 군사 동원 체계, 성직자와 귀족의 역할 재편 등 중세 봉건 질서의 기반을 제공하였으며, 사상적으로는 왕권의 신성화, 가신 관계의 제도화, 교회와 국가의 상호 의존적 구조 등 중세적 정치 문명의 원리를 확립하였다.
각 장은 주제별로 구성되었으며, 통치 체제, 교회와의 관계, 군사적 확장, 문화 정책, 후계 분쟁, 제국의 분열, 그리고 샤를마뉴 이후의 기억이라는 순서로 서술된다. 이는 연대기적 나열을 피하고, 특정 시기와 사건이 가진 구조적 의미를 보다 깊이 파악하기 위한 구성이다. 학문적 목적을 가진 독자뿐 아니라, 중세 유럽사의 구조를 이해하고자 하는 일반 독자들에게도 한 시대의 정치를 구성했던 원리와 그 결과가 현재에 미친 영향을 조망할 수 있는 안내서가 되기를 바란다.
중세사 연구학회는 중세의 역사와 정치, 경제, 생활상을 연구하는 모임입니다. 중세의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며 축적된 지식을 정리하여 쉬운 글로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