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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궁정:충성과 모략의 무대

새벽이 아직 왕의 이마에 도달하기 전, 왕궁의 중정(中庭)에는 철의 마찰음이 울린다. 호위대가 갑옷을 조이며 계단을 내려오고, 촛불의 연기가 어둠 속을 뚫는다. 한 명의 병사가 중무장을 한 채 외곽문으로 향하고, 또 다른 병사는 대기실 입구에서 경계한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궁정 경비장이 낮은 목소리로 장교에게 명령을 전달하며 속삭인다. 곧이어 통로를 따라 관리인들과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몇몇 신하들은 대기실에 모여 옷깃을 정돈한 채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오늘 아침, 왕 앞에 설 순서는 누구에게 먼저 돌아갈 것인가?   궁정의 하루는 이렇듯 눈에 띄지 않는 권력의 긴장감 속에서 시작된다. 중세의 궁정은 단순히 왕과 그 측근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치·행정·사회생활의 중심 무대였다. 왕..
새벽이 아직 왕의 이마에 도달하기 전, 왕궁의 중정(中庭)에는 철의 마찰음이 울린다. 호위대가 갑옷을 조이며 계단을 내려오고, 촛불의 연기가 어둠 속을 뚫는다. 한 명의 병사가 중무장을 한 채 외곽문으로 향하고, 또 다른 병사는 대기실 입구에서 경계한다.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궁정 경비장이 낮은 목소리로 장교에게 명령을 전달하며 속삭인다. 곧이어 통로를 따라 관리인들과 하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몇몇 신하들은 대기실에 모여 옷깃을 정돈한 채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오늘 아침, 왕 앞에 설 순서는 누구에게 먼저 돌아갈 것인가?
 
궁정의 하루는 이렇듯 눈에 띄지 않는 권력의 긴장감 속에서 시작된다. 중세의 궁정은 단순히 왕과 그 측근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라, 정치·행정·사회생활의 중심 무대였다. 왕이 깨어나 의자에 앉기도 전에, 그 주변에서는 이미 수많은 선택과 경계, 줄세우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안에서 호위병, 서기관, 수행 기사, 시종, 고문관들이 제각각의 위치에서 왕에게 다가갈 기회를 노렸다. 이른바 '왕의 눈에 드는 것'이야말로 중세 궁정의 가장 중요한 기술이었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궁정은 비교적 단순하다. 왕궁 혹은 대공의 성채, 그리고 그 내부의 회랑과 집무실, 대연회장, 소예배실, 사적 침소. 하지만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넘치도록 많았고, 제한된 자리를 둘러싼 암묵적 경쟁은 치열했다. 궁정이 단지 왕의 주변 공간이 아닌 ‘사회적 기구’로 기능했던 이유다. 중세 봉건 체제하에서 왕은 대부분의 경우 전국적 관료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권력은 곧 직접 곁에 머무르는 자들의 조합에 의해 구현되었다. 궁정은 행정관청이자 사교장소, 사법 심판의 장이자 정치 음모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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