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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도시 이야기

10세기 유럽, 농노는 토지를 떠날 수 없었고, 영주는 수확물과 충성을 요구했다. 모든 인간관계는 충성 서약과 의무로 짜여 있었고, 세계는 영지와 성, 교회와 수도원이라는 고정된 틀 안에서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 질서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새로운 삶의 양식이 움트기 시작했다. 도시, 그것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봉건적 세계관을 뒤흔드는 새로운 삶의 구조였다.   중세 초기는 대체로 ‘도시의 암흑기’로 불린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도시들은 인구를 잃고 기능을 상실했으며, 교통망은 무너졌고, 먼 거리의 교역은 극도로 축소되었다. 상업은 지역 자급자족의 경제 안에 묻혔고, 화폐는 실용성을 잃어갔다. 그러나 11세기 후반부터, 기후의 온난화와 농업기술의 발전은 인구 증가와 잉여 생산을 불러왔다. 이제 사..
10세기 유럽, 농노는 토지를 떠날 수 없었고, 영주는 수확물과 충성을 요구했다. 모든 인간관계는 충성 서약과 의무로 짜여 있었고, 세계는 영지와 성, 교회와 수도원이라는 고정된 틀 안에서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 질서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새로운 삶의 양식이 움트기 시작했다. 도시, 그것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봉건적 세계관을 뒤흔드는 새로운 삶의 구조였다.
 
중세 초기는 대체로 ‘도시의 암흑기’로 불린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후 도시들은 인구를 잃고 기능을 상실했으며, 교통망은 무너졌고, 먼 거리의 교역은 극도로 축소되었다. 상업은 지역 자급자족의 경제 안에 묻혔고, 화폐는 실용성을 잃어갔다. 그러나 11세기 후반부터, 기후의 온난화와 농업기술의 발전은 인구 증가와 잉여 생산을 불러왔다. 이제 사람들은 필요를 넘어선 생산물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잉여 자원은 이동하고, 교환되며, 거래되기 시작했다.
 
그 교차점에서 도시가 태어났다. 최초의 중세 도시는 단지 성안이나 수도원 주변에서 시작된 작은 시장이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에서는 먼 지방에서 온 상인들이 자신들의 물건을 팔았다. 때로는 순례자들이 모였고, 때로는 축제가 열렸다. 그렇게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인구 밀집지는 점차 항구나 교차로, 요새 근처에 자리 잡으며, 하나의 공간이 아닌 기능으로서의 ‘도시’를 만들어냈다.
 
도시가 의미를 가지기 시작한 순간은, 사람들이 그곳을 단지 ‘사는 곳’이 아닌 ‘살아가는 방식’으로 인식하면서부터였다. 도시민은 영주의 농노가 아니었고, 자신들의 규칙을 만들고, 스스로를 방어하며, 자치권을 주장했다. “도시의 공기는 자유롭게 한다”는 독일 속담처럼, 도시는 봉건적 질서에서 벗어난 자유의 가능성이었다.
 
물론 이 새로운 세계는 결코 평탄치 않았다. 영주는 도시에서 빠져나가는 농노를 잡아들였고, 교회는 도시 속 이방인과 유대인, 이교도의 존재를 경계했다. 그러나 도시의 등장은 되돌릴 수 없는 흐름이었다. 그 안에서 상인이, 장인이, 길드가, 법률이, 교육이 자라났다. 도시의 탄생은 단순한 인구 집결이 아니라, 봉건제라는 질서의 균열이자, 새로운 유럽의 태동이었다.
중세사 연구학회는 중세의 역사와 정치, 경제, 생활상을 연구하는 모임입니다. 중세의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며 축적된 지식을 정리하여 쉬운 글로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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