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초, 유럽은 오스만 제국의 팽창과 흑사병 이후의 사회 재편, 그리고 기독교 내부의 갈등으로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용의 기사단(Order of the Dragon)'이다. 이는 1408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지기스문트가 창설한 기독교 기사단으로, 주된 목표는 오스만 제국에 맞서 기독교 세계를 수호하고 내부 이단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기사단은 성 게오르기우스를 수호성인으로 삼았으며, 상징 문양은 용을 밟는 십자가였다.
왈라키아의 공작 블라드 2세는 1431년 용의 기사단에 입단하였다. 그는 헝가리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이기도 했던 지기스문트의 후원 속에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 입단을 계기로 그는 '드라쿨(Dracul)'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는데, 이는 라틴어 '드라코(Draco, 용)'에서 유래한 말로, 당시에는 '용의 기사'를 의미했다.
블라드 2세는 용의 기사단의 일원으로서 기독교 세계의 방파제 역할을 자처하며 오스만과의 국경을 지키는 전초기지가 되었다. 그러나 왈라키아는 헝가리와 오스만 사이의 완충지대로서 끊임없는 충성과 배신의 균형 위에 놓여 있었다. 블라드 2세는 때로는 오스만의 압력을 받아 아들들을 인질로 넘기기도 했고, 때로는 헝가리와의 협력을 강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외교적 줄타기는 그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으나, 동시에 아들 블라드 3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배신과 분노의 씨앗이 되었다.
결국 블라드 2세는 헝가리 귀족들의 반란과 오스만의 개입 속에서 권좌에서 쫓겨났고, 1447년 음모와 배신의 끝에서 살해당했다. 그의 죽음은 왈라키아의 권력 공백을 낳았고, 블라드 3세는 이 혼란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블라드 2세가 남긴 유산은 단지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중세 동유럽 국경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정치적 감각과, 충성과 배신, 신앙과 공포가 교차하는 복잡한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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