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0 0 7 0 0 21일전 0

중세 궁정 문화

이 책은 『장 프루아사르의 연대기』를 중심으로, 14세기 후반 유럽 궁정의 세계를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프루아사르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쟁과 외교, 연회와 토너먼트, 기사들의 사랑과 배신을 기록하면서, 당대 궁정의 정신과 문화, 그리고 인간관계의 정교한 형식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중세 궁정은 단지 왕과 귀족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질서였고, 무대였으며, 스스로를 연기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누가 앞에 앉는가, 누가 먼저 손을 드는가, 어느 손에 잔이 들리는가—이 모든 것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던 세계. 그 안에서 사랑은 시로 전해졌고, 질투는 침묵으로 발화되었으며, 충성은 의식의 형식 속에서 시험받았다.   연회장은 음악과 향신료, 금실로 장식된 천과 다듬어진 말..
이 책은 『장 프루아사르의 연대기』를 중심으로, 14세기 후반 유럽 궁정의 세계를 재구성한 결과물이다. 프루아사르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전쟁과 외교, 연회와 토너먼트, 기사들의 사랑과 배신을 기록하면서, 당대 궁정의 정신과 문화, 그리고 인간관계의 정교한 형식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중세 궁정은 단지 왕과 귀족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의 질서였고, 무대였으며, 스스로를 연기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누가 앞에 앉는가, 누가 먼저 손을 드는가, 어느 손에 잔이 들리는가—이 모든 것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던 세계. 그 안에서 사랑은 시로 전해졌고, 질투는 침묵으로 발화되었으며, 충성은 의식의 형식 속에서 시험받았다.
 
연회장은 음악과 향신료, 금실로 장식된 천과 다듬어진 말씨가 흐르던 장소였지만, 그 이면에는 언제나 말하지 않은 감정이 웅크리고 있었다. 형제는 형제를 견제했고, 왕은 기사를 경계했으며, 귀부인의 눈빛 하나에 성채 하나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말없이 지나친 손, 이름 없는 헌신, 알려진 배신보다 더 오래 궁정을 흔든 것은 언제나 감추어진 것들이었다.
 
프루아사르는 그런 세계의 연대기 작가였다. 그는 날것의 전쟁을 기록하면서도, 사랑의 리본 하나를 잊지 않았고, 전투보다 더 조용한 몰락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책은 그가 보았을 법한, 혹은 그의 시선에서 비껴 있었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이야기들을 다시 떠올려 보고자 한다.
 
궁정은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동시에, 그 고요함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감정과 사람이 잠재워져야 했던 곳이었다. 이 책은 그 안에서 피어난 관계와 감정의 구조를 따라가며, 침묵의 무게와 형식의 힘, 말해지지 않은 것들의 진실을 더듬는다. 때로는 시로 표현된 연애를, 때로는 침묵으로 처리된 정치적 배신을, 때로는 사랑 없는 결혼과 이름 없는 연애를 통해, 중세 궁정의 진짜 얼굴을 따라가 본다.
 
화려한 장식 뒤의 긴장, 명예의 이름 아래 감춰진 욕망, 형식 속에서 흐르는 감정—이 책이 그 복잡하고 정제된 세계를 다시금 떠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중세사 연구학회는 중세의 역사와 정치, 경제, 생활상을 연구하는 모임입니다. 중세의 역사적 사건을 연구하며 축적된 지식을 정리하여 쉬운 글로 대중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페이퍼 대표 이병훈 | 316-86-00520 | 통신판매 2017-서울강남-00994 서울 강남구 학동로2길19, 2층 (논현동,세일빌딩) 02-577-6002 help@upaper.kr 개인정보책임 : 이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