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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다 연대기로 읽는 중세 동프랑크왕국

『풀다 연대기』와 동프랑크의 시대   9세기 중반, 카롤링거 제국은 거대한 이상 속에서 태어난 하나의 정치적 약속이었다. 샤를마뉴의 대관 이후, 유럽은 ‘보편 제국’이라는 이상과 ‘왕국의 현실’ 사이를 흔들며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야 했다. 그리고 그 균열과 모색, 충돌과 재편의 과정은 단지 왕들의 명령이나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수도원의 기록과 필경사의 문장 속에서 더 정확하게 포착된다.   『풀다 연대기』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가장 날것의 형태로 보여주는 사료다. 풀다 수도원이라는 동프랑크 내 유서 깊은 수도원이 남긴 이 기록은, 단순히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중심이 사라지는 세계에서 변두리가 중심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연대기는 왕국이 분열되고, 황제가 병들며, 귀족들이 ..
『풀다 연대기』와 동프랑크의 시대
 
9세기 중반, 카롤링거 제국은 거대한 이상 속에서 태어난 하나의 정치적 약속이었다. 샤를마뉴의 대관 이후, 유럽은 ‘보편 제국’이라는 이상과 ‘왕국의 현실’ 사이를 흔들며 새로운 질서를 구축해 나가야 했다. 그리고 그 균열과 모색, 충돌과 재편의 과정은 단지 왕들의 명령이나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수도원의 기록과 필경사의 문장 속에서 더 정확하게 포착된다.
 
『풀다 연대기』는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가장 날것의 형태로 보여주는 사료다. 풀다 수도원이라는 동프랑크 내 유서 깊은 수도원이 남긴 이 기록은, 단순히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중심이 사라지는 세계에서 변두리가 중심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연대기는 왕국이 분열되고, 황제가 병들며, 귀족들이 스스로 자치권을 확보해 나가는 전환의 시기를 담담하게, 때로는 거의 침묵에 가까운 방식으로 기록한다.
 
이 책은 『풀다 연대기』에 기록된 9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초까지의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동프랑크 왕국이 어떻게 '제국의 후계자'에서 '귀족의 연합체'로 변화했는가를 설명하려는 시도다. 각 꼭지는 연대기 본문을 단순 해석하거나 요약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대의 정치 질서, 귀족과 왕권의 역학, 외적 침입에 대한 대응, 교회와 세속 권력의 이중 구조를 설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왕이 있는 세상'이 어떻게 '왕 없이 작동하는 정치 질서'로 이행했는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목격하게 된다.
 
『풀다 연대기』는 종종 무미건조하고 단편적이며, 감정 없는 문장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바로 그 서술 방식 안에서 우리는 이 시기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침묵의 기록은 때때로 역사의 가장 큰 진실을 드러낸다. 왕의 죽음보다, 아무도 왕을 다시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큰 변화의 증거이듯이.
 
이 책은 그 침묵을 해독하고, 그 문장 사이의 세계를 다시 펼쳐보려는 작업이다. 동프랑크라는 공간에서 한 시대가 어떻게 저물고, 새로운 정치 질서가 어떻게 태어났는가를 묻는 모든 이들에게, 『풀다 연대기』는 더없이 조용하고도 강력한 증언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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